거구의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의 무덤을 작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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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크기를 희망합니다. ‘키가 더 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매일 같이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평소 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은연중에 드러나곤 하죠. 키가 큰 친구에게 ‘윗 공기는 어때?’ 하고 장난스레 물어본 일도 한 번쯤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키가 크다고 불편한 점이 없겠느냐마는 똑같은 옷도 스타일이 더 좋아 보인다던가 어렵지 않게 선반 위까지 닿을 수 있다던가 하는 사소한 장점들은 종종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리고 키가 크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활용한 연주자도 있죠. 키는 198cm에 손은 30cm가 넘고, 농구선수 뺨치는 긴 팔의 소유자! 바로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예요. 그는 자신의 신체에 안성맞춤인 어려운 곡들을 작곡해 후대 피아니스트들에게 고통을 선사하기도 했죠. 한국에서도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보칼리제> 등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그런 곡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신체적 조건과 음악성을 타고났음에도, 라흐마니노프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데요. 그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유망한 천재에게 찾아온 우울증
라흐마니노프는 4살 때 자청해서 피아노를 배우고 10대 때 작곡을 시작했어요. 그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무려 17세에 작곡한 곡이랍니다. 심지어 2, 3악장은 겨우 이틀 반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지고 있죠. 그즈음 이미 상당한 난이도의 스크리아빈 에튀드 5번을 한 시간 만에 완성했을 정도로 라흐마니노프는 걸출한 인재였습니다.
24살이었던 1887년, 그는 첫 교향곡인 <교향곡 1번>을 발표하는데요. 예상과 달리 초연에 실패해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판과 독설을 받았어요. 초연이 실패했던 주된 이유로는 많은 이들이 알렉산더 글라주노프(Alexander Konstantinovich Glazunov, 1865~1936)의 지휘를 꼽곤 합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차이코프스키 이후 세대를 선도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지휘에서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거든요. 글라주노프는 리허설 단계에서 마음대로 작품 일부를 삭제하거나 수정하기까지 했어요. 그의 리드로 진행된 리허설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듯 설상가상의 상황에서 초연을 올리게 된 거였죠. 글라주노프의 독단적인 지휘는 술에 취한 상태로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심지어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평론가인 세자르 큐이(César Antonobich Cui, 1835~1918)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이 마치 "이집트의 10가지 재앙을 묘사한 것 같다”며 "지옥의 음악학교에서나 칭송받을 음악이다”라는 악평을 던졌고요.
큰 애정이 없는 곡이라도 이러한 평가를 받으면 속상할 법 한데, 심지어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때문에 그가 받은 충격은 그의 음악 인생을 뒤흔들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죠. 그는 이 충격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었고, 3-4년 간 아무 곡도 만들지 못했어요. 그는 “내 속에 무엇인가 부러져 버렸다.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뿌리 깊은 무감각이 날 점령해버렸다.”라고 말하며 한동안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습니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려던 내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교향곡 1번의 초연 후 라흐마니노프의 발언-

라흐마니노프가 무기력증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은 심리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1860~1939) 박사예요.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암시와 최면요법을 시도했습니다. “나는 다시 곡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곡은 최고의 곡이 될 것이다.”를 계속 상기시키도록 한 것이죠. 달 박사의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라흐마니노프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회심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발표하는데요. 우울증을 이겨낸 후 작곡한 곡인 만큼 당시 라흐마니노프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달 박사에게 헌정되었답니다.

2015년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위에 오르기도 한 협주곡 2번은 초연 당시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어요.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세계적인 작곡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죠. 이 곡은 우울증을 극복한 뒤 발표한 곡이라는 사실이 안 믿길 정도로 매우 유려하게 흘러가는 멜로디를 자랑합니다. 곡을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1악장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러시아의 대륙적이고 웅대한 기운을 담아 좌중을 압도하는 첫 8마디가 너무나도 유명하죠. 2악장은 반음계적인 도입부로 시작되면서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서정성을 보여줍니다. 3악장은 대위법적1)인 중후함 속에서 장대한 악성을 펼쳐 보이고요. 다시는 작곡하지 않을 것처럼 힘들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라흐마니노프는 또 한 번 위대한 곡을 탄생시킨 것이죠.
1) 대위법은 둘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이나 성부(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또는 고음부, 저음부, 주성부 등)를 동시에 결합해 곡을 만드는 방법이에요.
😎내 손은 여기까지 연주할 수 있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해요. 이는 그의 손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라고 전해지죠. 엄지로 '도'를 짚은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만큼 손가락이 길었으니까요. (건반을 상상해보세요. 이게… 되나요…?) 심지어 손가락을 완전히 펼쳤을 때 대략 30cm가 나왔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그의 손이 유난히 큰 것은 마르팡 증후군 때문이라고 전해지기도 하는데요. 피아노 연주자로서는 그의 신체적 특징이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10도 이상으로 손을 찢으며 건반을 4개 이상 누르는 등 최고난도 곡을 썼고 연주도 쉽게 소화할 수 있었죠. 물론 그의 곡을 연주한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고통스러웠겠지만요.
1909년 그는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발표했습니다. 영화 <샤인>에서는 데이비드 헬프곳이 이 곡을 연습하다 분열정동 장애를 일으켰다고 묘사되어 있는데요. 그만큼 어려웠다는 뜻이겠죠? 현대에는 손이 커야만 연주할 수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재미있는 방법으로 연주한 퍼포먼스가 많이 공유되기도 했어요. 손이 아니라 긴 막대기를 이용해 연주하는 것입니다. 또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부분이 있는데요. 작곡가가 본인의 곡을 직접 연주한 레코딩 전집이 남아 있는 유일한 연주자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모로 신기한 작곡가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속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몇 개 있어요. 바로 종교(종소리)와, 러시아인데요. 특히, 어렸을 때 정교회의 예배나 성당에서 들었던 종소리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죠. 예를 들어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의 피아노 타건과 합창 교향곡 <종>, <전주곡 2번>에는 교회의 종소리와 러시아 정교회의 엄숙함이 짙게 묻어난답니다. 종교와 관련한 작품 역시 다수 찾아볼 수 있는데요.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그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은 러시아 정교 성가 선율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성가에서 유래한 선율을 사용하는 등 아예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 외에도 작품관을 관통하는 또 다른 요소로는 그레고리안 성가 중 ‘진노의 날’의 동기2)가 존재합니다. 그의 많은 작품이 이 동기를 내포하거나 모티프로 사용해요. <피아노 소나타 1번>, <피아노 협주곡 2, 3번>, <파가니니의 주제에 대한 광시곡>, <전주곡 op.32 no.4>, <죽음의 섬>, <교향곡 3곡 전부>, <교항적 무곡 3번> 등 매우 많은 곡에서 이 동기를 사용했죠. 이 중 <죽음의 섬>과 <교향적 무곡 3번>은 아예 이 동기를 주선율로 삼아 곡을 완성시키기도 했어요.
2) 동기(motive)는 음악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를 이야기해요. 대체로 두 마디 정도를 이른답니다.
교향곡 1번이 혹평을 받아 3년 동안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지만, 사실 라흐마니노프의 삶에는 이외에도 그를 억누르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지주였지만 방탕하게 살아 가정에 소홀했고,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성격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것 역시 그를 힘들게 했어요. 슬럼프 시기에 사촌과 결혼했는데, 정교회가 이를 비난한 것 역시 그에게는 억압이었고요. 하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시련을 이겨냈고, 역사에 남을 음악들을 작곡했어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고요!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라흐마니노프의‘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어보는 것 어떨까요? 회심(會心)의 2번이 오늘 하루를 바꿔 놓을지도 모르니까요!
ㅇ참고자료
- 김윤경, “우울증 극복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대작’ 남겨”, 의학신문, 2019.
- 민은기, 「서양음악사2」, Chapter 44, 1900~1914: 조성의 붕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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