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를 꽉 쥐고 태어난... 파워긍정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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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지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그 감정처럼 좋은 결과를 끌어당기게 된다'라는 것인데요. 현실적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만드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실 거예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죠. 확언과 심상화, 감사일기나 소원 쓰기 같은 행동을 하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요. 그럼, 여기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작품을 감상해 보는 방법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요.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클래식을 찾으신다면, 멘델스존의 작품만 한 것이 없는데요. 그의 작품에선 늘 희망과 사랑, 행복과 우아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의 작품이 이토록 밝은 에너지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체능 신동+집안의 지원=멘델스존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은 1809년, 독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대대로 풍족하고 명망 있는 집안의 출신으로, 당시 음악가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였죠.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9~1786)은 당대의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였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와 친분이 깊었어요.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Abraham Mendelssohn, 1776~1835)은 독일의 3대 은행 중 하나를 창업한 유능한 은행가였고요. 멘델스존의 어머니도 같은 금융 가문의 딸로서 영문학과 불문학, 그리고 이탈리아 문학을 연구했던 지식인이었어요.

‘음악 신동’하면 우리는 보편적으로 모차르트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멘델스존 역시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한 음악 신동이었답니다. 4세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8세 때에는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이미 베토벤의 교향곡 전부를 암기해서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고 해요. 즉흥연주가 뛰어났고, 연주 또한 굉장히 정확했어요. 게다가 그는 음악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함을 겸비했죠. 역사·지리·문학·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고, 모친의 영향으로 모국어인 독일어 외에도 이탈리아어·프랑스어·영어·그리스어·라틴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에도 뛰어났어요. 그는 평생 조그마한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요.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들로, 빼어난 솜씨를 자랑했죠. 뼈대 있는 가문에서 자라 교양이 몸에 배어있고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였으며 잘 생기기까지 했던 멘델스존은, 상류 사교계에서 늘 화제가 되는 인물이었어요. 요즘 흔히 말하는 ‘인싸’였다고나 할까요?


긍정 에너지 가득! 멘델스존의 음악세계
그 당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사랑과 배신, 오기와 절망, 질병과 무절제의 삶이 많았는데요. 대대로 이어졌던 성숙한 가치관과 품위, 그리고 풍족한 환경에서 비롯된 멘델스존의 음악은 무언가 달라도 달랐어요.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은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항상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고 평했는데요. 이 한 줄로 그의 음악에 대한 설명이 충분할 만큼, 그의 곡들은 밝고 명랑한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런 그의 대표적인 곡이 <한여름 밤의 꿈> 서곡입니다. 이곡은 17세의 멘델스존에게 첫 성공을 가져다준 곡인데요.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퇴장 시에 들리는 곡이 바로 이 작품에 있는 <축혼 행진곡>이에요.
당시 낭만주의의 한복판에 있었던 멘델스존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균형을 중요시했어요. ‘낭만적인 고전파’라고 불리고 있는 그는 낭만주의의 내용을 취하면서도, 형식면에서는 고전주의의 질서와 조화를 그대로 고수했죠. 때문에, 그가 만든 음악은 교양이 있었고 선율적으로도 어두운 곡보다는 밝은 곡들이 많았어요. 악상이나 빠르기를 굉장히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했고요. 대표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 붙인 부수음악이나 회화적인 연주회용 서곡 <핑갈의 동굴>, 요정의 경쾌함 같은 익살스러운 <스케르초>, 피아노에 의한 노래라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집> 등의 곡이 있어요.
멘델스존은 교육활동에도 큰 뜻을 품고 있었어요. 그는 34세에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각계각층으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라이프치히 음악원(Leipzig Conservatory)’을 설립했어요. 그의 음악원은 그 당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학교로 이름을 날렸고, 현재까지도 독일에서 가장 역사 깊은 예술학교로 남아있어요. 그리그(Edward Grieg, 1843~1907), 알베니즈(Isaac Albeniz, 1860~190), 부조니(Ferrucci Busoni, 1866~1924), 바크하우스(Wilhelm Backhaus, 1884~1969) 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다수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합니다.

멘델스존은 작곡가로서, 그리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서도 이름을 날렸는데요. 자작곡뿐 아니라, 고전의 부활에도 힘을 쏟았어요.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초연 후 8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요. 이에 영향을 받아 그는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와 <엘리야>등의 걸작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외에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숨겨진 명곡들이 멘델스존의 연주나 지휘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죠.
유복함과 다재다능함까지, ‘금수저’를 손에 꽉 움켜쥐고 태어난, 워낙 타고난 것이 많은 멘델스존이죠. 덕분에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고군분투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갈 필요가 없었는데요. 때문에 그의 작품에선 현실을 찌르는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밝고 쾌활한 긍정 에너지만큼은 제대로 충전할 수 있어요. 그가 자신의 음악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학교를 설립하고, 거장들의 숨은 명곡들을 찾아내며 음악가로서의 시대적인 역할을 다하려 한 것 또한,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노력에서 나온 것이겠죠. 어쩌면, 그는 이미 그때,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고 있었던 것일는지도 모르겠어요!
ㅇ 참고자료
- 홍익희. “멘델스존.”홍익인간, 2012.
- 박예지.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Op.54에 대한 분석과 연구.”석사학위논문, 청주대학교, 2018.
- 원다정. “멘델스존 첼로 소나타 1번, Op.45 분석 연구.”석사학위논문, 성신여자대학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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