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언제 돌아오는 걸까,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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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며, 서정적이고 섬세한 음을 담아낸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Frédéric Chopin)은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입니다. 특히, 그의 생애에서 1838년부터 1847년까지의 시간은 수많은 명곡들을 남긴 시기로 유명한데요. 쇼팽은 이 시기에 조르주 상드라는 여인과 교제하며 그녀의 헌신과 지지 속에서 아름답고 원숙한 음악들을 남겼어요. 그녀는 쇼팽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였던 셈이죠. 무언가 남달랐던 쇼팽과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그들이 남긴 ‘빗방울 전주곡(Prélude No. 15 ‘Raindrop’ Op. 28-15)’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쇼팽의 뮤즈,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
어려서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쇼팽(1810~1849)은 19세 즈음, 조국 폴란드를 떠나 비엔나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의해 함락되자 폴란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파리로 망명하길 결심했어요. 망명 후 파리에서 쇼팽은 다양한 예술가들과 만나 교우관계를 맺었는데요. 특히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와는 각별한 우애를 가졌습니다. 리스트의 연인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 부인(Marie d'Agoult)의 살롱에 자주 드나들던 쇼팽은 1836년, 운명의 연인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녀가 바로, 조르주 상드(George Sand,1804~1976)였습니다.


여성 문필가였던 상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여장부였습니다. 그녀는 쇼팽보다 6세 연상으로,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남편과 불화를 겪은 뒤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로 올라와 아이들을 키우며 홀로 살고 있었어요. 당시 여성은 남성과 같이 대등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요. 신문에 소설 ‘앵디아나’를 기고하며 유명세를 얻었던 그녀는 남자 이름인 ‘조르주 상드’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어요. 턱시도를 입고 시가를 문, 겉보기에도 영락없는 사내의 차림으로 살롱에 드나들었고요.

쇼팽과 상드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서로가 지극히 필요했던 순간에 둘은 서로의 앞에 나타났어요. 1836년에 쇼팽은 폴란드의 귀족인 보진스카 백작의 딸 마리아 보진스카(Maria Wodzinska)와 약혼했었는데요. 이때 쇼팽은 마리아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파리와 독일을 오가며 사랑을 키워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잦은 병치레를 하던 쇼팽의 건강을 염려한 보진스카 백작 내외는 쇼팽과 마리아의 결혼을 반대하였고 쇼팽은 마리와의 이별로 인해 깊은 시름에 빠졌어요. 이때, 조르주 상드는 쇼팽에게 모성애와 같은 따듯한 보살핌을 보여주며 그에게 다가갔어요. 예민하고 섬세했던 쇼팽은 그와는 다르게 강인한 면을 갖춘 상드에게 점차 매료되었고, 이들은 연인 관계가 되었어요. 상드는 병약했던 쇼팽을 헌신적으로 지지하고 돌보았습니다.
폭우 속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연주곡
폐병으로 인한 쇼팽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자 상드는 쇼팽의 요양을 위하여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으로 요양을 떠나, 발데모사의 카르투하 수도원(Real Cartuja de Valldemossa)에 머물렀어요. 1838년에서 1839년 겨울 마요르카 섬에 머물던 시절, 쇼팽이 작곡 한 24개의 전주곡 중 대부분이 이 시기에 작곡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피아노 전주곡으로서는 단연코 압권인, ‘빗방울 전주곡’은 이때 작곡되었어요.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조르주 상드와 그녀의 자녀들은 식료품을 사기 위하여 외출하였고 병을 앓던 쇼팽은 집에 홀로 남아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쇼팽은 그들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쇼팽은 피아노 앞으로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상드와 아이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을 때, 쇼팽은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그 늦은 시간까지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해요.

‘빗방울 전주곡’은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중 가장 긴 곡이자 대표적인 곡이에요.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쇼팽 특유의 서정성이 담긴 멜로디와 함께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곡이죠. 이곡은 내림 라장조의 소스테누토(Sostenuto) 4/4 박자인 세 도막 형식(A-B-A)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Ab(=G#)의 음으로 잔잔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표현했는데요. 아름다운 멜로디가 무척이나 서정적이에요. 2부에서는 올림 다단조로 전조가 되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전개됩니다.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고 점차 거세어지는 빗줄기가 폭우가 되어 내려치는 듯하죠. 쇼팽의 깊어지는 불안감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요. 3부에서는 곡의 첫머리에 나왔던 서정적인 멜로디가 재등장해요. 거칠게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잦아들어 잔잔해질 때, 쇼팽은 아마도 체념하고 말았을 거예요. 점차 작아지던 빗방울 소리는 이내 사그라들며 곡은 마무리됩니다.

이후에도 상드는 쇼팽을 보살피며 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상드의 고향이었던 프랑스 노앙의 별장에서 지낼 무렵, 쇼팽은 ‘환상 폴로네즈’와 ‘강아지 왈츠’와 같은 곡을 탄생시켰죠. 하지만 1847년, 쇼팽과 상드는 상드의 자녀로 인한 오해로 갈등이 심해져 관계를 끝내게 됩니다. 쇼팽은 상드와 이별 후에도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며 음악 활동에 집중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1849년 향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연인 관계는 9년간 이어졌는데요. 그 기간 동안, 쇼팽을 대표할 수 있는 명곡의 대부분이 완성되었어요. 그중 ‘빗방울 전주곡’은 조르주 상드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는 곡이었죠. 지독한 폐병을 앓던 쇼팽이 혼자 방에 남아 들었던, 쏟아져 내렸던 빗방울 소리는 얼마나 그를 불안하게 했을까요? 하지만 동시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담아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있어요. 역시 낭만주의의 대표 작곡가, 쇼팽의 곡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는데요. ‘빗방울 전주곡’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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