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소음에 지친 당신께, 범패(梵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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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끔은 복잡한 도심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당장 어디론가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가 더 많기 마련이죠. 이럴 때 혹시, 눈을 감고 고즈넉한 자연 속에 있는 절을 떠올린 적이 있으신가요? 처마 밑 물고기 모양의 풍탁(風鐸)이 흔들리는 소리, 목탁소리, 스님의 염불을 외는 소리. 생각만으로도 어느새 마음이 잔잔히 가라앉곤 하죠. 절에서 온 소리들은 신기하게도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찰 음악 역시 그렇습니다. 불교에서 중요한 재(齋)나 포교를 할 때 사용되는 음악, ‘범패(梵唄)’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범패란 무엇인가
‘사찰 음악’이라고 하면, 반야심경과 금강경 반야심경(般若心經)과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을 외우는 불경 소리를 떠올리실 수도 있는데요. 엄밀히 따지면, 불경 소리는 음악이라고 할 수 없어요. 대신 불경을 가사로 한 음악인, ‘범패’가 있습니다. 범패는 불교 관련 의식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의 총칭으로, 불경을 송독하거나 찬양하는 음조를 가리킵니다. 범음(梵音), 또는 어산(魚山)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이는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우리에게 많이 낯선 이름이지만, 들어보신다면 그 익숙함에 깜짝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한 두 번쯤은 가봤던 절에, 백그라운드 음악으로 깔려있을 법한 음악이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범패’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음악일까요?

안채비소리와 겉채비소리
범패는 가수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보통의 스님이 부르는 ‘안채비소리’와 범패승의 ‘겉채비소리’가 있습니다. 안(內)채비는 말 그대로 재를 올리는 절 내부의 스님을, 겉(外)채비란 바깥에서 초청한 스님을 뜻하는데요. 두 소리 중 전문성을 띠는 소리는 겉채비소리이고, 보통 범패라고 하면 겉채비소리를 의미합니다. 겉채비소리는 다시 두 종류로 나뉘는데요. ‘홋소리’와 ‘짓소리’입니다.
홋소리와 짓소리
‘홋소리’는 범패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소리입니다. 한문으로 된 칠언사구(七言四句) 또는 오언사구(五言四句) 즉, 각각 한 구절에 7개의 한문, 5개의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설을 부르는데요. 놀랍게도, 훗소리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나 중국 혹은 일본풍이 아니라 한국풍의 범패입니다. 음계도 강원도나 경상도에서 쓰이는 민요의 음계와 비슷해서, 한국의 음악적 특징이 짙게 베어나지요.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재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 홋소리를 사용한답니다. 때문에 ‘범패’라고 하면 겉채비소리 중 홋소리를 의미한다고 보시면 돼요.

반면, 짓소리는 한문과 인도어(범어)를 가사로 삼는데요. 짓는 소리라는 뜻으로, 가락이 길고 규모가 크며 장엄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짓소리는 한 곡의 연주 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30~4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하는데요. 한 음을 1분 이상 길게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짓소리에는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스님들도 홋소리를 익힌 후 배운다고 하네요. 짓소리에는 이 외에도 몇 가지의 형식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합창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긴 연주 시간을 감당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데요. 때문에 여러 범패승들이 함께 부르는 짓소리는 그만의 매력과 품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허덜품’이라는 특징을 들 수 있는데요. 허덜품은 짓소리를 부르는 중에 진행되는 전주 또는 간주 구간을 뜻합니다. 합창하는 긴 시간동안, 합창자들이 쉬어가는 구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허덜품은 재의 절차에 따라 시간을 조절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재가 간단하게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서, 허덜품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하네요. 이제는 이를 기록하고 보존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요즘은 ASMR이나 공간음(Ambience)이라고 해서, 특정 공간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한데 모은 동영상이 인기죠. 그 중에서도 사찰의 공간음을 담은 컨텐츠는 늘 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사찰 소리에 관심이 있으신 여러분께, ‘범패’를 권합니다. 일단, 들으면서 평화를 찾으시고요. 재 의식에 쓰일 때에는 법당 안에서 치를 수 없는 큰 규모의 법회를 위해 야외에 임시로 마련한 자리, ‘야단법석 ’의 정수를 볼 수 있으니, 평화만으로는 심심하다 하시는 분들은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수륙재(水陸齋), 영산재(靈山齋)를 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특히, 영산재(靈山齋)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재될 정도로 가치가 높죠. 직접 듣고 보고 싶다면, 여러 불교 의식이 행해질 때 자유롭게 참석해서 들을 수 있답니다.
참고자료
- 정수일, 『실크로드 사전』, 창비출판사, 201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키워드: 짓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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